스트레스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으로 알려져 있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말은 “아, 스트레스 받아!”가 아닐까? 치과 진료의 특성상 매 치료마다 생기는 스트레스는 치과의사에게 늘 다가오곤 한다. 스트레스를 좋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스트레스 받을 때 기분 좋은 감정이 생기는 사람은 없다. ‘새로운 스트레스 과학’을 제안한 켈리 맥고니걸 박사는 그의 저서 ‘스트레스의 힘’에서 모두가 해롭다고 여기는 스트레스에 관한 상황을 “스트레스는 해롭기만 한 독이 아니라 이로운 약”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스트레스의 전형적인 반응인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해지거나 호흡과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가슴이 답답해지고 근육이 경직되는 반응증상은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 우리를 돕고자 작동하는 자연스러운 신체 작용으로 설명한다. 스트레스가 건강을 위협하는 그 자체가 아니라 스트레스는 해롭다는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진행된 한 연구에서는 스트레스가 해롭다고 ‘믿지 않은’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람들보다 사망 위험률이 낮아져 있었다. 즉, 스트레스 상황을 긍정의 촉매로 이용할 수 있
남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할 때, 남들이 수없이 실패했던 무언가에 도전하려고 할 때 우리에게는 항상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타고 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삶을 충만하게 만들기 위해서 용기는 필요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용기를 배우고 많은 일을 경험하고 부딪치면서 자신보다 더 자신 있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곤 한다. 마음을 타인에게 전달할 때도 용기가 필요하며 자신의 잘못을 먼저 시인할 때도 용기가 필요하다.로버트 E.스타웁 2세는 ‘용기 있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행동’의 저서에서 자신의 정체성, 존재의 본질을 찾아가는 특별한 경험이 바로 ‘용기’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일곱 가지 용기 있는 행동에는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 도전에 직면할 수 있는 용기, 수용할 수 있는 용기,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용기, 상처를 무릅쓸 수 있는 용기와 사랑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행동하는 용기”를 말한다. 그리고 모든 용기의 결론은 ‘진심어린 삶을 산다’는 것이라 서술하고 있다.2006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을 지낸 벤 S. 버냉키는 그의 자서전인
현대사회는 기회의 천국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는 하나가 되고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한 일이 없음직도 하다. 그만큼 모든 일의 진행과 효과에는 마음가짐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주위의 많은 일들이 인간관계에서 시작되고 끝나므로 이 과정이 믿음과 신뢰로 이어질 때 결과는 기대이상의 효과로 나타날 때가 많다.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란 자신 또는 누군가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나 기대, 예측이 그 대상에게 그대로 실현되는 경향으로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하여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 효과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긍정적으로 기대하면 상대방은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을 하면서 능률이 오르거나 기대에 충족되는 결과가 나오게 되는 현상을 나타낸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키프로스의 왕 피그말리온은 여성들의 결점을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고 한 평생 독신으로 살 것을 결심한다. 하지만 외로움과 여성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아무런 결점이 없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조각하여 함께 지내기로 하였다. 그는 이 조각상에게 옷을 입히고 목걸이를 걸어주며 어루만지고 보듬으면서 마치 자신의 아내인 것처럼 대
나는 후배들에게 ‘언제까지 진료하면서 개업할 것이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예전에는 50세까지 일할 것이라고도 했고 50세가 된 이후에는 55세까지만 일할 것이고도 했는데 어느새 나는 60세가 되었다. 요즘에도 치과의사의 정년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제는 의무가 되어버린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그렇게 쉽게 마무리하면서 말하지 않는다. 능력 닿는 대로 봉사하며 살겠다고 말하곤 한다. 나의 능력이 별거인가? 누구에겐가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나의 능력이고 봉사하는 마음일 것이다.나는 어머니의 권유로 치과의사가 되었다. 북한에서 혈혈단신 홀로 내려오신 나의 어머니께서는 미대에 진학하기를 원했던 나에게 ‘미술은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취미로 할 수 있다’며 능력 있는 전문직을 권하셨고, 그렇게 치과의사로서 나의 인생은 시작되었다. 사실 치과대학 생활은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았다. 항상 불만이 많았고 무언가 이루지 못한 답답함도 있었고 학교에서 배우는 치과 분야의 지식은 나에겐 늘 채워지지 않는 우물 같았다. 1980년도 초반 독일 유학 동안 나는 치과학문의 다양함에 눈을 뜨게 되었고, 치과가 단순히 치과 학문만이 아닌 미학, 공학과 기계적인 다양한 학문과 연계됨